[성명] 비민주적인 수가협상 방식 즉각 폐기하라
[성명] 비민주적인 수가협상 방식 즉각 폐기하라
  • 대한의원협회
  • 승인 2014.06.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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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부터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과 공급자인 의약단체간에 2015년도 건강보험 수가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금일 공단과의 최종 협상만을 남겨두고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표한 대한의사협회 협상단은 의원급에 지급된 급여비가 지난해에 비해 2.4% 증가하는 데 그쳤고, 전체 급여비에서 의원이 차지하는 점유율도 3년째 감소하여 21.1%의 점유율을 보이며, 환자 방문 일수도 전년보다 2% 감소하였다며 8.47%의 수가인상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공단은 공단 산하의 재정운영위원회가 지난해보다 수가인상분에 해당하는 추가소요재정 규모(벤딩폭)를 축소했다는 이유로 의협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향후에 이어질 협상 난항을 예고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총액계약제와 유사한 "진료비 목표관리제"를 부대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본 회는 지난 5월 29일 "수가가 정상화 되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이번 2015년 수가 협상에서 수가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을 뗄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간의 수가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가협상이 보험자와 공급자간의 동등한 입장에서의 민주적인 협상이 아니라, 공단과 공단 산하 재정운영위원회가 수퍼갑의 위치에서 을인 공급자들에게 저수가를 강요하는 비민주적이며 폭압적인 수가협상 체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회는 무엇보다도 수가협상에서 가입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대단히 큰 문제라고 본다. 국민건강보험법 제33조는 "요양급여비용의 계약 등 보험재정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공단에 재정운영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정운영위원회는 직장가입자 대표 10인, 지역가입자 대표 10인, 공익대표 10인 등의 총 3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익대표에는 보건복지부 및 기획재정부 공무원과 공단 및 심사평가원의 직원도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공급자인 요양기관의 대표는 단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공급자는 완전히 배제된 가입자 위주의 편향적인 재정운영위원회가 전체 수가 인상폭을 결정하고 이 인상폭을 기준으로 수가협상을 하고 있으니, 민주적이며 공정한 수가협상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재정운영위원회가 요양급여비용의 계약 등 보험재정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설치된 위원회이고,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 위원이 누구인지도 공개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정운영위원회의 위임을 받은 소위원회는 법에 전혀 명시되지 않은, 보험자가 수가인상에 투입할 수 있는 최대 재정소요액 규모(벤딩폭)를 결정하여 공단의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의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

공단은 재정운영위원회가 제시한 벤딩폭의 범위 내에서 요양기관 유형별로 수가협상을 하는데, 이는 결국 이미 낮은 단계의 총액계약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양기관유형들은 한정된 파이에서 조금이라도 더 받겠다며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습에서 빵 한 쪼가리라도 더 받기 위해 서로 주먹질을 해대는 노예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만약 공단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바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회부되는데, 협상 결렬을 이유로 재정운영위원회가 건정심에 페널티를 건의할 수가 있고 건정심 위원 구조 역시 공급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결국 요양기관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단과 합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단으로서는 너무나도 훌륭한 협상기재를 갖추고 있는 반면, 요양기관들은 노예 수가협상에 다름 없다고 할 것이다.

2013년 건강보험재정 누적흑자액이 8조1902억원에 달하였지만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밴딩폭을 보수적으로 축소한 이유는 바로 4대 중증질환 보장 등의 보장성 확대 정책 때문이다. 정부가 보장성을 확대하려면 그만큼의 가입자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거나 국고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2012년만 해도 보장성 확대에 1조 2천억원의 재정이 추가로 소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가입자들의 반발을 의식하여 보험료를 인상하지도 않을 뿐더러 정부의 국고지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올해 4대 중증질환 보장에 드는 비용은 이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의 보장성 확대정책으로 말미암아 공급자들에게 저수가를 강요했으며, 그 피해는 요양기관 유형들 중 의원급 의료기관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본 회는 이와 같은 비민주적 수가협상은 공급자들의 희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노예 수가협상에 지나지 않으며, 수가협상 구조가 민주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폭압적 협상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 국가가 제공해야 할 의료서비스를 대행하고 있는 민간요양기관에게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수가를 강제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며, 이는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오늘 있을 최종 협상에서 공단이 예의 낮은 수가를 강요한다면, 정부 스스로 건강보험제도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비민주적인 건정심 구조개편은 물론, 공급자가 배제된 공단 재정위원회에서 전체적인 수가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하며 실질적인 협상을 주도하는 작금의 수가협상에 대해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따라서 낮은 수가에 굴욕적인 수가협상을 할 바에는, 수가협상을 거부하고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노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2일

대한의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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